순천만에서 추억을 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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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순천만에서 추억을 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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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2.01.16 15:48
  • 조회수 922


 

새로운 시간의 시작을 함께하기 위한 여행으로 해돋이만큼 좋은 주제도 없을 터. 우리는 창연히 빛나는 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모양새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할까’, ‘어느 호젓한 길을 소중한 이와 함께 걸을 수는 없을까’ 하는 것들을.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초침을 따라 분주하게 지내온 터일까. 우리는 겨울 여행, 해돋이 여행에 모종의 환상을 품는다.


해돋이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동해다. 하지만 남도의 끝자락 전남 순천은 장엄한 해돋이와 황홀한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다.


해돋이 여행지로 순천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순천에 대해 잘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순천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마음에 담아둬야 할 것은 고 정채봉 작가가 1999년 11월 발표한 ‘눈을 감고 보는 길’의 한 구절이면 된다.


“바다가 아스라이 여인의 인조비단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순천만에 가보세요. 갈대가 훌쩍 키를 넘고 있으니까요.


순천만, 송광사와 선암사, 낙안읍성, 주암호…. 순수한 동심이 있는 우리 고향 순천길이 그대의 발길에 위안을 주리라 믿는다. 그대의 발길에 위안을 주리라 믿습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아름다운 풍광 두르소서.”


해돋이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별량면 학산리 화포해변으로 가야한다. ‘ㄷ’자로 생긴 순천만의 아랫부분에 위치해서 바닷가에서 멋진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는 장소다.


사실 순천만은 순천시를 중심으로 동쪽의 여수반도와 서쪽의 고흥반도에 둘러싸인 여자만의 일부다. 호수 같은 만으로 광활한 갯벌과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이 산과 바다와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지다.


화포해변의 해돋이는 동해의 정동진, 추암, 간절곶 등과는 다르다. 동해의 해돋이는 어둠 속에서 황금빛을 쏘아내며 바다 위로 불쑥 솟아오른다.


 

반면 화포해변의 해돋이는 두 단계를 거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사위가 칠흑처럼 어둔 새벽 바다 건너 산자락이 붉게 물든다.


그에 따라 물이 빠져나간 갯벌도 붉은 빛을 띤다. 이내 해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지만 해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은 환해지고 더 이상 해돋이를 기대하지 않게 될 즈음 해는 산 정상에서 고개를 내민다.


이즈음 시계는 오전 8시를 훌쩍 넘어선다. 해가 늦게 뜨는 만큼 다른 곳보다 천천히 준비해서 길을 나서도 된다. 해돋이의 장관이 끝나고 나면 학산해안길을 따라 가며 겨울 바다의 진경을 품에 안아도 좋다.


순천을 여행하면서 신경을 써야 할 것 중 하나는 해넘이 시간에 맞춰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의 용산전망대에 올라야한다는 점이다.

 

공원의 면적이 17만평이나 되어 시간에 쫓기면 우리나라 제일의 갈대밭과 해넘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기 십상이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에 가면 제일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순천문학관이다. 순천문학관은 공원 구역 내에 위치해 있지 않다.


그러나 별도의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공원 주차장에서 20여분을 걸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공원 안에서 갈대열차를 타고 가는 게 편리하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친절한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좋다.


순천문학관은 순천 출신의 동화작가 고 정채봉과 소설가 고 김승옥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소박해 보이는 초가는 각각 정채봉관, 김승옥관으로 꾸며졌다.


정채봉관에는 작가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과 작품, 암자로 흘러온 고아 남매의 이야기를 담은 ‘오세암’에 대한 설명이 세세히 적혀있다.


김승옥관에서는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던 순천의 공간을 재구성해 탄생시킨 ‘무진기행’을 만나게 된다.


기자는 ‘무진기행’에서 순천과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 바다와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순천문학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순천만 탐험에 나선다. 넓디넓은 갈대밭이 펼쳐진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 하나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기도 했다.


 

나무 데크가 놓인 갈대밭을 헤집고 다니며 갈대밭의 정취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다. 갈대밭을 휘감아 도는 데크의 길이는 0.8km. 누구라도 한 바퀴 돌아보기에 좋다.


천천히 걷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스산한 느낌보다는 자연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듯하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배를 타고 갈대숲을 돌아봐도 좋다. 대대포구에서 출발해 물길을 따라 와온해변까지 다녀오는 30분 코스다.


배를 타고 지나다보면 후드득 물을 차고 날갯짓을 하는 새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머리 갈매기 등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200여종의 조류가 순천만 갈대밭에 둥지를 틀고 산다.


낮이 지나고 저녁이 되면서 순천만은 빛나기 시작한다. 노을의 장관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붉게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은 용산전망대. 천천히 걸어서 30분이면 닿는 야트막한 산이라 아이들도 엄마 손을 잡고 올라간다.


저녁 무렵 썰물 때면 40km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개펄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의 S자 물길을 따라 배가 천천히 미끄러져 나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철새가 어지러이 날고 해는 물길 너머로 뚝 떨어진다. 시커먼 갯벌은 붉게 물든다.


 

순천만의 정취를 모두 누린 뒤에는 드라마 속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순천드라마촬영장으로 향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 ‘제빵왕 김탁구’ 등의 드라마와 ‘마파도2’, ‘님은 먼곳에’ 등의 영화를 촬영한 세트장이다.


촬영장은 크게 순천읍, 서울 변두리, 서울 달동네 세트장으로 나뉜다. 순천읍 세트장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도 초 소도시 읍내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번화한 순천시를 만날 수 있다.


재미난 곳은 달동네 세트장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1960년대 중반의 서울 변두리 달동네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 김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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