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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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여성

바로 눕다

최한나 시인

  • 기자
  • 등록 2016.12.25 17:00
  • 조회수 1,649


집게벌레 한 마리
안방에 바로 누워있다
넓은 안방을 한 점으로 독차지하고 있다
아무도 선뜻 다가가려 하지 않는
한 점을 휴지로 싸서 버린다

당신도 저 안방에서
반듯하게 바로 누운 적 있었다
그 때도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주저했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가슴 펴고 독차지하고 있던 안방
긴 밭고랑을 천천히 기던
한평생 해가 뜨고 해가 지던 구릉이
방바닥에 반듯이 펴지자
평온한 잠을 데리고 일몰이 찾아왔다
눈을 뜨고 손을 내밀 것도 같은데,
방문 밖에서 기웃거리던
두 눈이 시큰거리기도 했던가
젊은 날의 등에 업혀 깔깔거렸던 기억이
두 발로 서서 바들바들 떨었었던가

한 번도 반듯하게 펴진 것을 본 적이 없다
간지럽게 등 긁어준 기억 가물가물하다
등에 가두어온 당신의 속울음이
휘발된 그 날 이후
쓸모없는 햇빛만 지쳐가는
아무도 뜯어먹지 않는 고랑마다
잡풀만 무성하다


*최한나
월간 <시와표현> 등단 (2014)
월간 <시와표현> 편집위원
시집 『밥이 그립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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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 즉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지는 꽃이라 하여 인간의 덧없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폄하한다. 무릇 집게벌레 한 마리에서도 나머지의 공간을 우주화를 시키는가하면 텅 빈 공간을 충만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바로 누운 한 생이 동일화시키는 것은 당신 그 당신은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서 부모님일 것이라 짐작한다. 누구의 생이든 작은 사물에서도 기시감 같은 것이 떠오르곤 하지만 이렇듯 인간의 나약함은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우주에 비하면 한 점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 한 점에 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물의 파격적인 것은 죽음에서 다른 죽음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미묘한 변화를 음미할 수 있겠다. 중요한 그 생에서 한 번도 반듯하게 펴진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인데 전체 맥락이 시인의 본 뜻으로 보면 될까?

  고스란히 시 속을 배회하는 죽음이 고로 아픔이라는 것인데 우리의 삶도 죽음도 별반 다르지 않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아는 시인의 마음은 한치 앞도 못 보는 것보다 진부함에 생명을 불어넣고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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