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정의의 4.19혁명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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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자유.민주. 정의의 4.19혁명 기념일

 순천 보훈지청장 강춘석
다가오는 4월 19일은 우리의 꽃다운 젊은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정부 수립이후 종신집권을 획책한 자유당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에 맞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총 궐기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우리나라 초대 정권인 자유당 정권은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되었는데, 그 핵심에는 주로 친일 관료 출신들이 있었다. 그 정통성이 취약한 이 정권은 소위 대통령 삼선을 위해 1954년 ‘사사오입(四捨五入)’개헌, 40% 사전투표와 3인조 또는 5인조에 의한 반 공개투표 등에 따른 1960년 3?15부정선거, 1960년 마산상고에 입학하여 그해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4월 10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유기되어 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학생의 주검 등 각종 부정부패와 강압적인 불법경찰통치를 통해 독재정권 유지에 집착하였다.

 이에 1960년 4월 19일, 서울에 소재한 대학의 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총 궐기 선언문을 낭독하고, 중앙청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였으며, 이에 부정부패 정권에 큰 불만을 품은 수많은 고등학생을 비롯한 민주시민들이 동조하여 이 민주행진 대열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저지하던 경찰의 무차별적인 발포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이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당면한 자유당 독재 정권은 신속히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을 진주시켜 이 사태를 공권력으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상황에 직면한 서울의 각 대학 교수 259명은 1960년 4월 25일, ‘대통령 이하 3부요인은 이 사태를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정?부통령 선거를 다시 하라’는 시국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자극받은 민주시민들도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향한 시위를 전개해 나갔으며, 마침내 자유당 정권의 12년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51년 전의 4?19혁명은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미완의 혁명에 그쳤지만, 우리 헌정사(憲政史)에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민주이념을 확고히 하였다는 데 그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자유?민주?정의라는 4?19혁명의 숭고한 이념은 월남전쟁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정신으로, 독재 군부정권시기인 1980년에는 5?18광주민주항쟁의 정신으로 이어져 마침내 1987년 6월 민중항쟁을 통해 표출되었음을 볼 때 바로 이 정신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원동력이었고, 민족정기인 혼(魂)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만일 그때 부정부패에 빠진 자유당 정권의 독재정치에 저항한 수많은 학생들을 비롯한 민주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큰 외침이 없었다면 우리가 확고한 민족정기의 역사의식 아래 지금의 민주주의를 감히 꽃 피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거대한 격변의 시대요, 지식과 정보의 홍수로 인해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힘든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무한경쟁 시대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내외 환경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4?19혁명을 통해 심어진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토대로 우리 조국을 더 큰 대한민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하나로 결집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랑스러운 민주 자산을 가진 우리나라는 이제 21세기 지구촌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서 있다. 마지막으로 제51주년 4?19혁명 기념일을 맞이하여 4?19혁명 부상자, 희생자, 공로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우리 개개인이 현 위치에서 과연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고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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