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출신, 서문기 시인 좋은시조 신인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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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소리

전남 광양출신, 서문기 시인 좋은시조 신인작품상 수상

잠긴 문을 통과하는 자유의 소리 커피 한 잔에도 물결이 일었다.

 전남 광양출신 서문기 시인

서문기 시인이 계간지 2018년 여름호 좋은시조에서 신인작품상을 수상하는 영예을 안았다.

서문기 시인은 전남 광양출신으로 시조부문에서 2008년과 2009년에 중앙일보 백일장 차상을 받았고 2015년 미래시학 시로 등단했다.

이번 수상에 심사위원을 맡은 박시교, 김영재, 박영교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통해 서문기 시인은 오랜 습작기를 거쳐 등단한 시인으로 그의 작품 속에는 삶 속 아픔이 피부로 절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라 전했다.

이어 수상작 「채석강을 읽다」을 두고 채석강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변산 팔경 중의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를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술을 마시며 노닐었다는 중국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이 불여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 가보면 바위가 수많은 책을 쌓아올린 것같이 보이는 바위가 있고 주위 풍광이 보기에 좋다.

서문기 시인은 그것을 1연은 설화집처럼, 2연은 독경소리로, 3연 번뇌의 쇄신 처로, 마지막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의연하게 존재함을 섬세하게 작품화 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재봉틀을 돌리는 여자」에서는 자신의 삶에 대한 아픔과 어려운 일들을 살아가면서 실패를 거듭하지만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잊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삶의 엿보인다. 시인의 자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평했다.

「아버지의 등」은 어렵게 살아온 아버지의 지게를 통해 고아와 같은 얼룩진 삶을 생각한다. 그래도 목련꽃 활짝 피는 봄과 같은 날을 생각하면서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이름표 옆에 코 흘리면 닦아내던 손수건, 어릴 적 가난한 시절의 아픔이지만 그래도 푸르게 살아온 지금, 이제 인생의 가을을 짐작케 한다고 전했다.

「쇠뜨기」는 시인 자신을 쇠뜨기 풀에 비유한 작품이다. 쇠뜨기는 밟아도 또 살아나고 쳐내도 또 올라오는 들풀이다. 어렵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지금의 자신을 반추反芻해보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장기를 삽니다」는 신체부위를 통해 어렵고 급하게 구해야하는 절박한 삶의 현장이 전개되는 작품이다. 살아야하는 절박함 속에서 온몸으로 전해오는 전율을 느끼면서 허덕이는 한 생명을 놓고 시인은 그 삶의 절박함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 전했다.

심사위원들은 "서문기 시인이 앞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을 써서 독자들에게 보답해 주기를 바란다"며 신인작품상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 수 상 작 -

채석강을 읽다

오래도록 읽었던 흔적들이 보인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철썩거리고
너덜한 금 틈새마다 전설들이 읽힌다

빼곡히 쓰여졌던 고랑고랑 이름들이
세월을 만들어내는 주름진 잔상이다
자갈돌 쌓여가는 소원 수많은 이의 독경소리

저마다 사연들을 한 가지씩 가져와서
단상에 올려놓고 묵념하듯 숙여간다
수만 겹 바람을 가르고 페이지를 넘긴다

한 많은 얘기들을 쏟아놓은 골골함이
모래알 고사목처럼 파도를 읽어가고
암반층 절벽 절벽마다 용왕인 듯 앉았다.

 

재봉틀 돌리는 여자

중년의 막바지를 재봉틀이 깁고 있다
벌창한 구멍마다 밑실을 채 올려서
저 일격 떨어질 때마다 오금저린 길을 낸다

가끔씩 뚝 끊어진 고삐 같은 실거리는   
박았다 뜯어내도 아귀가 맞지 않아
내 생의 불행은 없다
북도리를 만지면서

한 벌의 촛대 세워 탈바꿈 하기까지
자로 재고 모로 재고 그만큼만 잘라서
버성긴 숨소리마저 손사래를 흔든다

못 볼 것 다 보았다 괜찮다 괜찮다고
바늘귀에 딸려오는 실 같은 버거운 길
자미원 북두칠성도 우주 밖을 깁는다.

 

아버지의 등 

지게는 사막이다, 먼 이국땅 입양까지
아버지 등에 업혀 보육원 앞 세워 놓고
곧, 오마! 얼룩진 상흔 몇 마디로 끊긴 발길

바람 세찬 낯선 풍경 그을린 얼굴이다
황량한 모래無地 고래 등짐 보내 놓던
목련꽃 활짝 핀 거리 오랜 기억 수평선

내리쬔 땡볕조차 길 잃은 미아 되는
얽히고 설킨 설움 발치에 퍼 담아서
내 자란 나뭇가지마다
늘 푸른 잎 부려 놓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싹둑 자른 화인 한 점
증표라곤 이름표에 코 묻은 수건 한 장
아리랑 고샅길마다
푯말 없는 늦가을.

 

쇠뜨기 

가난 떠 돈 웃음은 늘 등뼈로 받는다.
철이면 철 따라서 빈약한 쇠뜨기는
등불도 밝히지 못한
얼음골을 넘는다

지나는 안개 속은 사지 몰린 벼랑으로
갈숲도 저만치서 가슴앓이로 움츠리다
간간히 비추는 달빛
이정표가 되는 밤

지난 그 굽이굽이 한 세월 돌아보면
꾸벅 잠 깨어나서 조갈증도 풀리지 못한
배곯은 내 뱃속 소리
도랑물인 듯 흐른다.

뜨내기 잡풀 같은 유목민의 섧디 섧은
뜬세상 눈꼬리도 포개 놓고 매질하는
목덜미 시린 삭풍이
가다가도 울컥 인다.


장기 삽니다

한 덩이 간신하게 내려놓아 허기지고
눈앞에 액정만한 숨어 핀 장기 꽃이
뿌리 채 뽑히려는지
얼굴 붉어 집니다

눈치코치 손가락이 수화手話까지 해가면서
확성기도 없는 것이 고성방가 대통처럼
급하게 공중화장실로 들어앉아 힘씁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고빗사위 꽃을 피워
온몸으로 전해오는 끝없이 오는 전율
장기요 장기 삽니다
목청 굵은 골목길

 

 


< 시인 당선소감 >  

  잠긴 문으로 밖을 나갈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소리일 것이다.  그것도 자유를 얻는 소리여야 더 가뿐히 나가지 않을까 싶다. 갇혀 있다는 것은 움직임에 불편이 따른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인다는 것은 껍질을 깨고 비로소 밖으로 자유를 찾아 보내는 것이다. 물론 보잘 것 없는 글을 감동 있게 읽어주는 소리가 있다면 그 자유의 기쁨이 배가 되는 일이다.

  내 시야에 드물게 들어오는 빛 한 가닥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당선소식이 전해왔을 때였다. 많은 시들이 문틈으로 걸려 밖을 빠져 나가지 못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많은 시간들이었다. 몇 편의 글을 보내고 나서 늘 잊고 지내는 시간을 뚫고 당선이란 웃음이 잠긴 문을 통과했을 때는 커피 한 잔에도 물결이 일었다.

  저를 많이 아껴주시는 분들께 먼저 감사에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졸작을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특별히 오랫동안 저의 습작기를 지켜봐주신 박영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를 알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잠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웃음의 소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문기 시인 약력-

*2018년 좋은시조 시조 등단
*2015년 미래시학 시 등단
*2009년 2월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차상
*2008년 8월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차상
*제 10회, 11회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 추모전국시조현상공모 차하

 

 

 

 

 

 

 

< 이기현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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