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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 강영소(姜永韶) 선생

기사입력 2013.08.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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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미주대륙 독립운동 명문가의 지도자이셨던 강영소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강영소 선생은 1886년 평안남도 증산군에서 태어났고, 190541일 미국 하와이에 이주하여 6년여를 살았다.

      하와이에 거주하게 된 강영소는 동지에서 항일운동 등을 목적으로 하는 에와친목회에 입회했다. 1906년에는 합성협회 회원이 되어 활동을 전개했다.

      1909년 합성협회와 공립협회가 합동하여 국민회를 성립하였고, 동년에 국민회가 대동보국회와 합동하여 대한인국민회를 조직했다.

      강영소는 국민회와 대한인국민회 회원으로 참여,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총무를 역임햇다.

      대한인국민회는 분리되어 있던 미국지역 한인사회 단체를 1910년 하나의 조직체로 묶어 결성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단체였다. 조직의 목표는 미주 사회의 안녕과 자치 신장, 그리고 조국의 독립이었다.

      강영소는 미국지역 한인사회의 대표기관 대한인국민회와 이와 관련된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특히 1910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더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서기, 샌프란시스코지방 대의원, 동회 기관지 신한민보사의 사무원 등을 역임한 것이 그것이다.

      19135월에는 안창호와 함께 흥사단을 조직했고, 이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무를 맡았다. 나아가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으로도 활동했다.

      강영소는 언론운동도 전개하였다. 1922??신한민보??의 편집장과 ??독립신문??의 하와이 지국장을 역임한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강영소는 미국 하와이로 이주, 한인단체에 참여한 뒤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에 노력했다.

      더불어 한인사회의 대표기관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에 참여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2011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순천보훈청 = 허대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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