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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장 (-구룡산 시편)

홍성란 시조시인

기사입력 2016.01.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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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몸살 난 애기엄마 젖가슴만한 둘레 보면
    눅눅한 십일월 저녁 고뿔들까 안쓰러워
    갓난애 무덤일 거야 혼자 늙은 갓난애

    팔베개 누운 발치엔 눈물 파란 열매 달고
    또래별 총총 까마중 흰 꽃 피었으니
    키 작은 떡갈나무 잎새 눈두덩도 붉어라

    풀물 든 울음소리 나지막이 들릴 듯해
    가슴 한쪽 도려내어 묻고 가신 옷자락
    산중에 샛길이 열려 절설 하나 내려온다

     
    *홍성란 시인의 약력

    -1989년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논문 『시조의 형식실험과 현대성의 모색 양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1995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2003년 유심작품상
    -2005년 중앙시조대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황진이 별곡』『따뜻한 슬픔』『겨울 약속』『바람 불어 그리운 날』『춤』
    -시선집 『명자꽃』『백여덟 송이 애기메꽃』
    -현대시조감상에세이 『백팔번뇌-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시조를 가르치며 유심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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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 >

     무구장이란 묵뫼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흔적이 없는 무덤을 일컫는다. 또는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봉분이 내려앉아 묘가 거의 바닥에 닿아 있는 형태의 무덤을 말한다. 그러니 1수 종장에 갓난애의 무덤일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무구장을 이렇게 신들린 것처럼 끌어내 읊조리는 절창이 있겠는가.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시인은 갓난애의 무덤이라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그곳에 키 작은 떡갈나무에 비유해 그 잎새에 눈두덩이 붉다는 것이다. 그럴까? 왜 붉다고 했을까? 주위에는 흰 꽃들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시조를 보면 에둘러 말하는 데에서 온건한 맛이 우려나 깊어지는 맛이다.
     
      옛 선인들은 시 한 구절을 놓고 다음 대구를 찾지 못해 죽는 순간에도 애착과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하물며 오롯이 시조만을 사랑한다던 홍성란 시인은 오죽하랴 싶었다. 그러니 이 시조가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한 것은 3수 중장에서이다. 무구장 즉 묵뫼를 이렇게 적절히 표현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 못할 일이다.

      시의 구색을 갖춘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글자 한 자가 글자 한 행이 또는 한 장이 어디에 맞춰야 흐름을 타는지 말이다. 어느 책에서인가 내가 외우고 있는 말 중에 “풍부하되 한 글자도 남지 않고, 간략하되 한 마디도 빼먹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다. 말하자면 한 글자만 더하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글, 그런 시를 쓰라는 말이라고 한다.

      바로 이 글이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독자인 내가 이 시조에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라는 것은 중복을 꺼려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어디 한군데도 중복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롯이 묵뫼만을 바라보는 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남의 시를 부러워하지 말라! 어느 시인이 가르쳐준 말이다.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조에 넉 놓고 있다는 것이다.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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