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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말

정양 시인

기사입력 2016.01.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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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껐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 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겨온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심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 치며 새겨 읽는다

     

    *정양 시인의 약력

    -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 1968년 대한일보 시 당선,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 시집으로『까마귀떼 (은혜, 1980)』외 다수
    - 모악문학상(2001), 아름다운작가상(2002), 백석문학상(2005) 등 수상
    -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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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 >
      진저리 쳐지는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껐다씨펄” 이란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조여오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에 보고 잡은 사람 곁에 없다면 하고 생각하니 시커먼 먹물이 눈앞에서 싸리몽둥이처럼 후려친다.

      화자는 진정 경험을 하고 썼을까, 그랬을 것이다. 곁에 있어야할 사람이 없다면 누구나 이 시와 같이 환장하고 팔딱 뛰는 그런 가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혀에서 감겨오는 언어며 내용들에게 통증이 온몸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보고 싶은 것을!!
    <-서문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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