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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양전백(梁甸伯)선생

기사입력 2013.03.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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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1운동의 불꽃을 점화시킨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양전백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평안북도 선천(宣川) 출신이며, 기독교인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 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 우리나라 최초의 목사의 한 사람으로 선천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했다.

    신성중학교와 보성여학교를 설립하고, 1911년에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1914년에 예수교 장로회 총회 부회장이 되었다가 1916년 총회장이 되었다.

    1919년 2월 12일에는 동지규합을 위해 선천에 왔던 이승훈을 자기의 집에서 만나 이명룡·유여대·김병조 등과 3·1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적극 호응했다.

    그는 이명룡과 함께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키로 약속하고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하기 위해 자신의 인장을 함태영에게 보관케 했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의 태화관에 손병희 등의 동지와 함께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하여 경시청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전도 사업을 계속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순천 보훈지청 = 허대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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