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홍암나철기념관, 찬란한 문화유산이 흉물에 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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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홍암나철기념관, 찬란한 문화유산이 흉물에 가려

항일의 역사적 배경은 중국과 동아시아에 널리 알려야 할 문화유산

보성군은 지난 2016년 나철선생 순명 100주년을 맞아 벌교읍에 홍암나철기념관을 건립했다.규모로는 부지면적 24,684㎡에 사업비 76억 5000만원(국비 14억 군비 62억)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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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나철기념관 전경

 

방문객은 개관 후 2019년 12,231명으로 늘어가는 추세 였으나 코로나를 맞아 2021년에는 5,894로 감소했다가 지난해 2022년에는 13,129명으로 다시 증가세에 있다.


그런데 이곳의 위치가 도로 안쪽에 쑥 들어서 있고 길에서 보았을땐 빈 건물에 가려져 있어 식별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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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쪽 건물에 가려 나철기념관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입구를 전부 가리는 낡은 건물이 흉물스럽기까지 하다는 지적이다.


이 건물에 대해 문제 제기가 많아 보성군에서는 매입을 위해 나섰으나, 소유자와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방치된 상태다.


한편 전남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마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은 대종교를 창시 유학자임에도 한글과 민족정신을 일깨웠고 을사조약을 주도한 매국을 암살하려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선각자였다. 정부는 1962년 나철 선생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국문 국어 국사에 연구와 조예가 깊었고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존재한다”와 “남녀 불문하고 문자를 해득해야 한다. 한글을 먼저 깨우치라”는 그의 말은 보성의 정신이자 한국의 역사적 자산으로 남았다.


나철은 1916년 구월산에서 자결했다. 1910년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과 더불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남았다.


나철과 황현은 같은 일제 침략을 겪은 같은 중국에 있어서는 위대한 역사이자 인문학적 요소가 크다. 이를 널리 알려 아시아의 인문학적 유산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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